감사연습에 대한 편견과 오해 3가지
감사연습에 대한 편견과 오해
느낌과 자각의 순간을 말로 다 표현하는 것은 에고마인드에게 어려운 일입니다. 에고마인드는 생각하느라 분주하며 갈등이 생기면 과부하가 걸리기 쉽습니다. 에고마인드는 외부 정보를 받아들일 때 왜곡, 삭제, 조작한 후 기억정보로 저장합니다. 에고마인드는 정합되지 못한 정체성이나 신념 체계들로 자기모순과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에고마인드는 고집을 부리기도 하지만 사실 너무나 연약하고 허점투성이가 많습니다. 감사연습에 대한 편견과 오해 에고마인드는 심리적 안전지대에서 머물면서 안전한 삶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에고는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에고의 편향적 특성 때문에 편견과 오해가 발생합니다. 편향된 견해는 생각과 감정에 오류가 발생시키고 인체에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감사연습의 목적
감사연습은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감사연습은 나에게만 적용하는 연습이므로 다른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든지 관계없이 자신의 내 면을 정화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나의 내면을 정화하는 것이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감사연습에 다른 사람을 개입시키면 안됩니다.
감사연습을 잘못 이해하고 다음과 같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감사연습을 하면 고상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감사연습의 목표는 정화입니다. 정화를 하려면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거나, 남들의 눈치를 보게 되면 자신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감사연습은 고상한 인격을 형성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 하게 나를 표현하고 아무런 문제없이 평온한 삶을 살아가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기를 당했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면 욕을 하고 화를 내도 됩니다.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분노를 억누르면 오히려 문제가 더 커집니다.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분노의 에너지를 마음껏 표현해야 합니다.
억눌린 감정을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고 나면 내면의 압력이 줄어들어 편안하게 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잠시 화내면서 욕을 퍼부었다고 내가 아프거나 상대방이 잘못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감정을 풀어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에너지가 남아있으면 머릿속에서 미워하는 생각이 맴돌 것입니다.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내 면 건강에 유익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분노를 억누르고 CTS가 없는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면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감정의 응어리와 찌꺼기를 완전히 풀어내고 정화해야 합니다.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정화하고 나면 더 이상 미워하는 생각도, 분노의 감정도 사라지고 평안해질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분노의 대상을 자비와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 게 됩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고 감사로 축복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둘째, 감사연습으로 자신을 편안하게 이완시키면 자아가 약화될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감사연습은 자신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나로 자신을 강화시킵니다. 물리적 차원에서 비물리적인 차원으로 의식을 상승하려면 에고를 잠시 정지시켜야 합니다. 에고를 완전히 정지하고 탈출하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이라는 차원전환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완명상을 하거나, 꿈을 꾸는 동안에도 차원전환을 경험합니다. 잠깐동안 차원전환을 한다고 에고가 약화되거나 없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완연습은 긴장된 운동 근육과 장기를 이완하는 것이므로 에너지의 흐름을 개선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완으로 몸을 약 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영적인 에너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에고를 잠시 내려놓고 장대한 자아를 받아들여 자신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완전한 신뢰로 완전한 자아를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영적인 파워를 회복하게 됩니다. 자 신의 에고를 정복하고 자신의 강화시키는 것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만의 권리입니다.
셋째, 감사연습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거나 적합하다는 오해입니다. 물리적인 현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사연습에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감사연습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깨어남과 깨달음의 지점에 도달한 사람만 감사연습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감사연습은 에고-중심의 삶에서 가슴-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살아가려면 완전한 나자신과 우주의 잠재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슴을 열고 순수하게 자신을 받아 들인다면 쉽고 빠르게 삶을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고가 강하게 저항하면 에고를 정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에고를 안심시키고 에고를 참나와 융합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넷째 감사연습은 부정, 무능, 나약, 결핍 등의 어둠을 허용하는 연습이라는 오해입니다. 감사연습은 어둠을 수용하는 연습입니다. 어둠을 수용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조작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둠을 수용하면 어둠의 에너지가 변형되기 시작합니다. 어둠 또한 신성의 일부이므로 신성으로 통합해야 합니다.
어둠은 보편적 인 진리가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해도 안된다, 나는 약하고 아프다, 나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 라는 생각은 에고의 착각과 환영 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보편적인 진리인 실재는 무한하며 장대합니다. 근원은 무한한 풍요와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보편적인 진리에 따라 긍정적인 실현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있습니다. 감사연습은 변형의 원리에 따라 어둠과 빛을 통합하는 연습입니다. 하나로 통합된 실재는 빛도 어둠도 아닙니다.
https://youtu.be/3-QCLxbrhiU?si=3joc2Q7np2a0JY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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